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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하면 봉팔러들은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 내겐 플라밍고와 투우, 스페니시 기타, 가우디와 피카소, 그리고 아련한 알람브라 궁전까지..위키대백과만 좀 뒤져도 여행가이드 책 한 권 분량쯤은 너끈히 뽑을 만한 잘 알려진 이미지와 이름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열거한 많은 것들이 유명한 탓에 스페인을 가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몇 년전에 읽은 한 소설책에서 주인공인 남자친구가 사이가 틀어져 이별을 직감하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스페인의 작은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짧은 묘사속에 평화로움과 안온함들이 그대로 전해졌었다. 그리고 그 후로 언제가는 유명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곳을 찾아 스페인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사실 준비도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는 무계획한 여정이라서 그런지 막상 여행기사를 쓰자니 어느 도시, 무엇을 써야할 지 막연한 기분이 든다. 여정이 끝나고 아쉬움과 안도감에 휩싸여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던 비행기안에서 여행중에 계획없이 무턱대고 찍어 댄 사진들을 하나씩 돌려 보았다. 못생긴 솜씨로 찍은 사진들 이지만 기억을 재생하는 데에는 충분히 훌륭한 재료들이다. 들은 들답게, 산과 바다는 또 산대로 바다대로 아름다운 이 곳을 봉팔러들에게 다 소개하는 건 아쉽게도 내 능력밖의 일임을 절감하지만 평범한 여행객도 한두가지 정도는 반드시 수다를 통해 쏟아 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스페인에 관한 한 나의 첫 번째 수다는 누구와 얘기를 하든 파쎄오(Paseo)와 따빠스(Tapas)로 시작될 것임에 틀림없다. 파쎄오(Paseo)는 스페인어의 Pasear (걷다, 산책하다)를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리말로 산책이라고 하면 적당한 번역이 될 것같지만 어쩐지 우리말 ‘산책’은 파쎄오에 비해 의미가 광범위하고 느낌이 정적이어서 심심한 감상을 준다. ‘저녁 산책’이나 ‘저녁 마실’이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그냥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기위해 ‘파쎄오’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느낀대로라면 파쎄오는 주로 하루의 노동이 마무리되는 저녁7시 이후 시작되는데 유난히 해가 길고 그 빛이 강렬한 스페인 남부 지역이기에 비로소 열기가 한 풀 꺾인 저녁 날씨는 더 없이 청량하고 산뜻하다. 내가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밤 8시와 12시 사이에 찍은 사진들인데 10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후레시를 필요없을 만큼 밤에도 충분한 태양 빛이 남아있어서 그들의 낮이 얼마나 긴지 느끼게 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엔 누구라도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된다.
기분 좋은 밤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미로같은 좁다란 골목길에 올망졸망 붙은 작은 선술집들엔 조명이 하나,둘 밝혀지고 금새 여유로운 물결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들 무리가 빚는 유쾌한 소음이 골목안에 가득찬다. 가게밖으로 내 놓은 좁다란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부산스런 주인장의 움직임사이엔 언제나 ‘따빠스(Tapas)’라 적힌 메뉴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올리브 – 웬만한 한국식당에서 기본옵션으로 김치 내 주듯 여긴 올리브를 내 온다맛도 지역마다 천차 만별. 개인적으로 젤 맛있는 건 올리브 가운데 안쵸비 간것을 채운것 따빠스(Tapas)는 우리말로 스페인식 간식이라고 하면 될듯하다. 따빠스는 원래 달콤한 맛술인 쉐리주에 날파리들이 꼬이지 말라고 햄이나 빵을 얇게 썰어서 뚜껑처럼 술잔에 얹어서 대접한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염분이 많은 햄등이 갈증을 유발하면서 '한잔 또 한잔'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효과도 발휘하는 덕에 다양한 메뉴개발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위키대백과, ‘요리의 즐거움(The Joy of Cooking)’에서 인용). 스페인의 저녁식사는 밤9시 이 후에야 (10나 11시가 되어야 시작되는 식당도 많다고 함) 시작되기 때문에 파쎄오가 시작되는 시간은 곧 따빠스의 시간이기도 하다.
튀긴 고추 – 고추를 올리브 기름에 튀겨서 소금쳐 주는 초간단 요리. 그러나 잊지 못할 별미. 고국의 고속도로표 동글이감자를 연상하게 만들더군 돼지껍질 튀김과 감자 튀김 – 정확히는 돼지껍질이 붙은 돼지고기 튀김요리. 얼마나 튀겼는지 씹을 때 빠삭빠삭. 맛도 좋지만 씹는 재미가 있었음 한가로운 산책과 유쾌한 대화에는 맛난 음식이 천생 궁합이 아니던가? 문득 출출한 기운도 잊게 해주고 물값보다 저렴한 와인 한잔에 따빠스 한 접시는 훌륭한 에피타이져 노릇도 한다. 또 나 같이 입 짧은 사람들에겐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게 해주어 식도락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바(Bar)에서 따빠스를 만날 수 있지만 행여 메뉴판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기죽지 말고 물어 보라. 스페인어 라고는 우노, 도스, 뜨레스 (스페인어 하나, 둘, 셋) 밖에 모르는 나였지만 “따빠쓰?” 이 한마디로 가는 곳 어디에서도 따빠스를 즐길 수 있었다. 올리브 꼬치 – 맨 왼쪽에 참치, 올리브, 고추피클, 작은 양파 피클을 순서대로 끼운 것을 먹어 봤다. 다른 거 실컷 먹고 난 후 였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신음소리 냈음 가지구이와 브리치즈 – ‘와우’했던 요리 중에 하나. 위에 보이는 소스는 뜻밖에도 꿀이다 오징어 구이와 샐러드 – 작은 오징어 통구이가 레몬 마요네즈랑 야채를 만났을 때. 여행은 마드리드에서 시작해 남쪽 해안인 말라가에서 끝났는데 지역을 막론하고 (때론 산속 마을도)해산물이 단연 식탁의 꽃이더군. 해물은 신선도가 생명인데 가는 곳마다 신선한 해물이 있어서 놀라웠다 또 특별한 것을 주문할 것이 아니라면 따빠스 메뉴가 보기 좋게 진열되 있는 가게가 많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골라 지명하면서 “따빠스”하면 다 알아 듣고 음식을 내 준다. 말 한마디 모르면서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쉬운 곳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따빠스 한 접시의 가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시골마을에선 1~2유로정도고 관광객이 많은 곳에선 4~5유로씩 가격이 뛰기도 했다. 평균 3유로정도라면 웬만한 지역에선 맛난 한 접시를 살 수있을 것이다. 동행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 그닥 부담스런 가격은 아닌듯. 해산물 샐러드 – 각종 해산물과 신선한살사의 결합 샐러드 칙피(Chickpea, 병아리 콩) 스프 – 놀랍게도 맛이 팥죽과 매우 흡사했음 정어리와 바케트 – 오래씹으면 쥐포에서 느끼는 맛을 느낄 수 있음 나는 여행동안 최대한 많은따빠스를 먹어 보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위장이 3분의 1쯤 늘어난 것 같아 걱정이다. 따빠스는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바와 식당마다 (혹은 지역마다) 각자 조금씩은 다른 조리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진정 무궁무진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먹은 것은 많은데 사진을 뒤져 보니 별로 쓸 만한 사진은 남아 있지 않아 예쁜 그림을 많이 못 올리게 되 아쉽다. 항상 접시가 비워질 때 쯤, 제 정신이 돌아오면서 ‘아..사진’하곤 했던 탓에…
오징어 튀김 – 미국서 냉동 오징어만 먹다가 신선한 오징어 맛보니 잠깐 정신을 놓았었지 햄(하몽)으로 채운 구운 버섯- 두말하기 어렵다. 맛있다 토마토와 참치 – 초간단 요리인데 이 두 재료의 궁합이 의외로 훌륭하다. 싱싱 토마토 (한국식의 약간 달달하고 딱딱한 토마토는 더욱 어울림, 사진 찍지 못한 다른 도시에선 한국 토마토같은 맛이었거든) 뚝뚝 썰고 참치 올리고, 올리브 유와 소금치면 끝. 소금은 반드시 굵은 소금 쓸 것. 대부분의 식당에서 굵은 소금을 사용하고 있더라 가파쵸 (Gazpacho) – 토마토를 베이스로 하는 찬 스프. 스페인 음식 중 먹어봐야 할 세가지 음식 중 하나. 나머지 둘은 밑에 빠예야 와 플랜 빠에야 – 특대 사이즈 빠에야. 사진속의 빠에야가 아직 요리중인지라 맛은 못봤다 플랜 – 커스터드 푸딩의 일종. 달달한 대표적인 스페인식 디저트 상그리아 – 두말이 필요할까? 출출한 기운을 달래 준 따빠스 빈 접시가 테이블에 쌓이면 슬슬 선술집을 나와 큰 거리 구경에 나선다. 더욱 부드러워진 밤바람과 이제야 알록달록 제 빛을 찾는 상점의 불빛들, 짙푸른 파랑으로 색을 바꾼 하늘은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한다.
골목에서 시작된 명랑한 기운은 한 잔의 와인과 몇 점의 하몽을 소비하는 동안 어느새 골목밖으로 새어 나가 큰 길가와 광장으로 번져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젊은이와 늙은이 구별없이 발랄함이 몸에 밴 이 사람들은 길가의 누구도 구경꾼이게 두지 않는다.
매일 밤이 축제같은 흥겨운 분위기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녀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거리는 생생하고 풍요롭고 따뜻한 기운들로 넘쳐난다. 최근의 불황이나 실업, 경제적 고통따위의 현실적인 문제가 가끔씩 의문을 드리우게 하는 건 여행자인 나 뿐인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밤바람과 매일 보는 달그림자 앞에선 빅 D의 광풍도 맥을 못춘다.
알람에 맞춘대로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생기없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을 이리저리 돌리다 잠이드는 쳇바퀴 도는 뉴욕의 생활이 자연스레 오버랩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평일에 저녁 약속이라도 생기면 오히려 다음날 걱정에 맘이 불편했던 기억들, 건조하고 무덤덤한 생활의 단편들만 떠오른다. 문득 스페인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했던 옛 동료의 소망이 먼 기억속에서 떠오르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맑은 하늘, 어슬렁 거리면서 걷는 길, 산책길에 보는 이웃의 얼굴들 같은 사소한 것들이 하챦은 것은 아니라고 밤바람이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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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