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노무현 재단 산행을 하기로 했던 날이다. 그런데 김해 사정이 급박하다는 전갈이 계속 와서 분당 자봉에 함께 간 형님, 지역 형님, 서울시당 이쁜이 이렇게 토요일 밤에 내려가기로 결정을 하고, 꺼내든 수단이 비박산행이었다. 토요일 우리 마님께 비박산행을 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뻔스럽게 날리는데 마눌 버럭 외친다.
'산에 갈거면 내일 우리 셋이 같이 가!'
이리저리 달래고, 또 우기는데 결정타가 날라 든다.
'가족 내팽개치고 혼자 그렇게 다니는 게 노무현정신이야?'
게임 끝이다. 작전 실패. 요즘 이래저래 밖으로 돌은 결과는 가혹했다. 그렇게 일요일이 되었다.
분위기가 별로 안좋다. 내도, 마눌도. 하지만 우리 아들은 넉살좋게 말을 건다.
'아빠, 오늘 어디 산에 갈거예요?' / 어디 가고 싶은데 '북한산' / 거긴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안돼. '그럼 어디 가지?' / 집 뒤에 안산이나 가자.
아침 먹고,청소하고 서로 뚱한 채로 아이가 가족이라 말하는 강아지도 데리고 집을 나선다. 바람부는 날에 하늘은 뿌연 게, 딱 내마음 같은 날씨였다.
산 입구부터 양쪽으로 늘어선 개나리의 향연이 어지러운 내마음을 정리해 준다. 산에 왔으니 즐거운 산행이나 하라고.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 지엄한 마누라, 아들과 동생. 혹 나를 씹고 있는 건 아니길 바라며 노랑 개나리와 잘 어울린다. 우리 가족.
이쁘지? 꽃이름은 패스...
둘이 구덩이에 들어가서 뭐하고 있을까? 실제는 참호를 저렇게 파 놓았더군. 전에는 없었는데... 이상해.
우리 아들이다. 나랑 산에 함께 다닌 지 2년. 이제 북한산은 거뜬히 오른다. 씩씩하게 커라!
우리 아이가 며칠 전 엄마한테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단다.
* 엄마, 저기 엄마가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아저씨가 있으면 아빠랑 헤어지고 그 아저씨랑 결혼해도 돼 - ......(아무말 못하고 한참 후) 그게 무슨 말이야? * 다른 아저씨하고 결혼해도 괜찮다고. - ...... * 그럼 나는 카츄데리고 엄마한테 가서 살거야. 그리고 엄마가 또 아기도 낳으면 내가 이뻐해줄께. -......(당황 그 자체) * ...... 그런데 나는 엄마,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요즘 내가 이일 저일 밖으로 돌아서 조금 분위기가 안좋기는 했지만 엉엉 울면서 이 말을 하는 아내에게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 아이들 원래 그러면서 크는거지 뭐......
난 산을 타면서 계속 기회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주 가던 바위로 식구들을 데리고 갔다. 김밥 먹었다.
그리고 바위 아래서 발견한 이상한 꽃나무. 산에서 자생한 나무가 아니라 누가 갔다 심어 놨다. 꽃을 사랑해 달라는 리본을 달아서.
봉원사 입구에 핀 진달래꽃. 마찬가지로 올해 처음 보았다. 봉원사가 강북에서는 꽤 큰 절이다. 강남에 있는 봉은사 보다는 적겠지만. 그러고 보니 불전 사진은 찍은 게 없다. 내 머릿 속에서는 계속 기회를 보고 있었으니까.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개나리를 만났다. 아이를 불렀다. 동생 안고 사진 찍자고 하니 폼이 저렇다. 전에 아이에게 동생 낳아줄까 물었더니 단호하게 싫단다. 장난감 다 망가뜨린다고. 그러면서 저렇게 안고 있는 카츄가 동생이란다, 엄마,아빠 다음으로 좋아하는.
산행을 마무리하는 계단을 우리 식구들은 내려가고 낯선 사람들은 또 올라오고 이게 인생이렷다. 그리고 나는 내 의문의 숙제를 끝냈다.
돌아오는 길 슬쩍 말을 건넸다.
/ 윤서야, 너 며칠 전에 엄마한테 뭐라고 했다며. * 내가요? 기억없는데.. / 니가 그랬다며, 뭐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있으면 헤어지고 그 아저씨랑 결혼하라고. * 아, 그거요. (그냥 웃는 녀석) / ... 왜 그렇게 말했어? * 그냥요. 그리고 나는 엄마,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 그래, 그런데 니가 그런 생각한 이유가 있을거 아냐. 그리고 아빠는 혼자 어떻게 살아? * 왜요? 아빠도 더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되는데. / 아빠가 엄마랑 너 없으면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 * 음... 그렇네 정말. / 너는 마음이 너무 아픈데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어? * 이히히.. 아니. / 아빠는 니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정말 궁금해 * 그거는요, 나도 커서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했는데 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헤어지고 그 여자랑 결혼할거예요. / 뭐라구... 야, 그렇게 하는 건 안좋은 생각 같은데. 그럼 처음에 결혼했던 여자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 안그래? * 그래요. / 저.. 그래서 결혼는 그냥 하는 게 아니야. 정말 곰곰히 생각해서 평생을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를 만나야지. 아빠처럼. 잘 생각해~~ *그렇구나~~ (딴청 핀다)
대충 여기서 끝냈다. 고놈 참 웃긴다.
결국 정답은 어제 잠자리에서 찾았다.
* 아빠, 아빠는 어렸을 적에 인기 좋았어? / 응, 아빠는 그런 거 잘 몰랐는데. 그건 왜? 너는 인기가 좋았으면 좋겠어? * 응 / 왜? * 그래야 여러명 중에서 고를 수가 있잖아. / 뭐? ㅎㅎㅎㅎ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