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뒷산 근린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작은 숲도 있고 각종 운동 기구들이 산책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뛸 수 있는 트랙과 테니스장 농구장등도 구비되어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1년전 이맘때 부턴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가는 시간을 변경했는데도 참 이상하게 마주치게 된다.
지난 가을부터는 날이 추우면 안보게 되고 따뜻해 지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겨울이 한창 진행중일 때는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번 달 부터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그 춥던 겨울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쨌든 산책을 하려면 길 중간을 차지한 그들을 통과해야 한다.
첨에 그들을 만날을 때는 당국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닌가 했다. 어둠속에서 이상한 괴성을 지르거나 누군가의 등을 후려치는 소리, 헛구역질 소리가 숲속을 메아리쳤으니까. 그들과 가까워 지면 그들은 소리도 내지 않았고 흩어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왜 내가 가까이 가면 피하지?, 왜 내가 멀어지면 또 시작하지? 혹여 집단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던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다.
그러길 여러 차례, 어느 날은 내가 다가가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난 좀더 또렷하게 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어둠속 이지만 정자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대충 목격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할렐루야...아멘....퍽퍽...우웨엑....칵 퉤~.. 엘리엘리엘리 어럴럴럴러러러럴..."
타잔이 동물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듯한 이상한 괴성은 방언이란 것이었고 퍽퍽 때리는 것은 안수기도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받는 사람은 몸안에 어떤 것을 밖으로 억지로 내뱉겠다는 듯이 구역질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역할이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은 성경책 펼쳐놓고 구절을 중얼거렸고 다른 사람은 좀 떨어져서 망을 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망을 보면서 안수자의 말끝마다 할렐루야나 아멘을 리듬감 있게 붙여댔다. 그 솜씨가 소리판에서 추임새 잘 멕이는 청중고수를 보는 것 같았다.
벚꽃이 피고 여름의 절정으로 갈 수록 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찬송가를 부르며 나무들에 배치기나 등치기 하는 아줌마들(아니 왜 나무는 괴롭히고 그러지),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는 자, 할렐루야와 주여의 소리가 숲속에 가득했다. 숫자가 늘어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의 의식행위는 도가 지나쳐 보였다.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민들 눈치를 볼 법도 한데 말이다. 바로 산아래엔 주택가가 즐비한테 저렇게 소리쳐도 되나 싶었다. 날이 더워서 다들 창문을 열어 놓을 것인데.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건 딱 한번이다. 산책로 끝쪽 가로등 아래서 마주쳤는데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당사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길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길이야,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나무판넬길도 깔아 주셨잖아, 전엔 비오고 그러면 신발에 흙도 묻었는데 이젠 그런일 없어, 도심속에 이런 숲이라니 굉장해, 우리에게 이런 곳을 주시다니 우리는 정말 은혜받은 거야....". 함께 산책하는 이웃이 그들의 말을 듣고 내게 그랬다. "이길(나무판넬길)은 구청에서 공공근로 사업으로 만든 거야, 주님은 개뿔~"
한 번은 두시간 늦게 산책을 나갔다. 늦은 밤이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조용해서 좋구나 하던 찰나 멀리서 노래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역시나 그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혼자여서 그랬나. 그들 중 두명의 여자가 날 따라 오면서 찬송가를 불러댔다. 내가 걸음을 빨리 걷자 그들도 빨리 따라 붙는게 아닌가. 내가 더 빨리 걸어서 차이가 벌어지자 그들은 거리 좁히기를 포기하고 대신 목소리 볼륨을 높이면서 따라왔다. 산모퉁이 돌기전 찬송가가 찬송고함으로 바꿨다. 왜들 저러지?
그 후로는 멀리 돌아서 근린 공원 운동장으로 갔다. 그리고 근처 아파트 단지 주변 숲길을 거닐다가 갔던 길 그대로 다시 되돌아 오곤 했다. 코스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뭐 날이 추워지면서는 다시 원래의 코스를 찾았지만. 지난 밤 산책에서도 그들과 마주쳤다. 봄이 오고 4번째다. 예전만큼의 숫자가 아니었고 전보다 조용히 노래했다. 그렇지만 날이 더 따뜻해지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운동장을 돌다가 산수유 나무아래에 서서 한참동안 꽃구경 하면서 행복에 젖었다. 역시나 꽃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난 산수유꽃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니들이 그리스도다, 오늘밤... 소리없이 나를 구원했구나". 멀리 돌아서 집으로 왔다. 이젠 코스를 바꿀 때다.
야이 10cm들아~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