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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눈이 내린다. 사장님이 어린아이처럼 유리창에 붙어 서 있다. 나도 나란히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본다. 금세 유리창에 입김이 서린다. “눈이 나리네요.” 하니까 이런 대꾸가 돌아온다. “나도 눈 있어, 인마!” 그러고는 시를 한 수 읊어 보란다. “무슨 시를요?” “이런 풍경에 어울리는 시.” 머리를 굴리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땐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면 성질 급한 사장님이 알아서 한다. “비서라는 것이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역시. "들어봐라. 나태주 시인의 산수유 꽃 진 자리, 라는 시다.” “예.”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군에겐가 말해 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 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 꽃에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볕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말해준 나의 말 여름 한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 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 나태주 육필 시집, "그대는 오늘도 멀리 있다"(지만지)에서 인용함. 시인이 손수 쓴 것을 인쇄한 시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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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꽃 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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