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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칼키Khalki를 위해.
이 영화를 좀 늦게 봤다. 원래 93년(독일현지)에 메이킹필름이 공개되고 94년에 개봉되었는데, 상당히 뒤늦은 98년 6월14일에 <파니핑크>를 보았다. 영화를 못본이유는 제대로 기억못해도, 파니핑크를 보았던 연도와 날짜까지 제대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당시 98프랑스월드컵이 진행되던 기간동안 아마도 우리기준으로 리용 현지8시경에 차범근이 이끌던 한국팀과 멕시코의 첫경기에서 하석주가 선제골을 넣자마자 백태클로 퇴장당하고 후반에 3골을 연거푸 내주며 역전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던 탓이다. 그날 하도 열이받아서 잠이안와가지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골라봤던 영화였다.
원제목은 Keiner Liebt' Mich 이고 영어권시장 공개제목은 Nobody Loves Me다. 독일어가 우리식 발음에 상당히 익숙치않고 한국측 배급사에서 제목을 여주인공이름으로 순화시킴에따라 '파니핑크' 로 개봉되었다. 대충웃기게 분장해놓으면 만사형통일것같은 코미디연기가 실제로 알고보면 가장어려운 연기로 평가되듯이, 기존의 평범한 일상을 정교히 잡는것또한 대단히 힘든연출로 인식되는데. 독일 기성감독으로서 이방면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도리스 되리가 주저없이 손꼽힐정도로 유명세를 가진 여류감독이다.
<파니핑크>를 본사람들 사이에서 아마도 가장많이 회자될 '여자 나이 서른에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길을 걷다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 라는 명대사와 함께, 이영화는 우울한 인생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를 격려와 행복한 유머로 고독한 관객들을 위로해준다. 보편적 대중성과 더불어 컬트적 인기까지 누린 보기드문 케이스 중 하나가<파니핑크>이기도 하다.
<파니핑크>는 30대를 앞둔 여주인공 파니핑크가 겪는 연애사,게이친구 오르페우를 하늘로 보내는 조사,평범치않은 파니핑크의 일상속에 마주치는 더욱 비현실적인 잔혹사. 이렇게 세가지 틀로 구성됨을 확인할수있다. 도리스 되리 감독에대해 잘알고있을 친구들이 많아서 개인적견해를 밝혀보기가 조심스럽지만, 이영화는 절대로 페미니즘정신을 구현하는 작품이아니다. 서울에서 펼쳐지는 여성영화제의 회고전 단골메뉴도 '도리스' 인데. 차라리 그녀의 다른작품은 몰라도<파니핑크>만큼은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 출품되는것이 훨씬 합당하다. 80년대초반까지 잠오는영화의 상징격으로 독일을 발목잡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 의 한계를 퀴어+페미니즘+환타지의 조합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중무장시켜 극복한 이도 도리스 되리였다. 그녀는 일부계층을 대변하는 느낌보다 종합적인 주류에 가깝다. 평론과 수익, 두마리토끼역시 꾸준히 거머쥐어왔다. 알고보면 단순히 특정분야의 대표격으로 치부하기엔 저변이 상당한 감독이다.
새로움의 반복이란게 따지고보면 가장 식상한 요소로 자리할수있는데, 어느때보다 평범한 일상속에 희비극을 교차시켜 매번 식상함 없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도리스 되리의 연출력이 가장빛을 발하는 작품도<파니핑크>라 생각한다. 이영화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매년 발렌타인데이마다 대학과 아트홀등지에서<파니 핑크>가 상연된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나라들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 나조차도 여전히 놀랍다.
빼놓을 수없는 영화의 백미는, 프랑스 여성보컬리즘의 상징 에디뜨 피아프의 명곡 Non, Jene Regrette Rien 이 삽입된것도 지나칠수없겠다.두번흐른다. 파니핑크가 친구 오르페우에게 생일케이크를 받는장면, 그리고 영화의 마무리에 맞춰 실제 제작실황이 담긴 모습뒤에 쓰인다. 아마 네이버에 찾아보면 영화기자 홍성진씨가 엔딩이 삭제된채로 국내에출시되었다고 적어놨을텐데,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한 정보다. <파니핑크>는 지금은 없어진 우일영상에서 비디오로 출시했다가 중간에 재정난으로 출고량을 못채우고 타사였던 스타맥스가 추가분을 대신하였었다. 그 추가분엔 용케도 엔딩시크릿이 담겨있다. 놀랄노짜다. 물론 시간이 지나 발빠르게 보급된 DVD로는 무삭제판 너무도 쉽게 구할수있다.
도리스 되리는 그의 영화를 언제나 카메라에 담아주던 파트너, 촬영감독 헬게 바인들러와 부부로서도 연을 맺고있었다. 슬프게도 바인들러는<파니핑크>작업을 끝으로 96년에 사망하였다. 작품속에서 야누스적인 연기로 팔색조 매력을 뽐냈던 마리아 슈나이더는 파니핑크를 통해 '독일의 맥라이언' 으로 불리우며 전성기를 맞이했었고, 차가운 감성과 따뜻한 이성의 조화를 가장잘 표현해내는 도리스 되리는 지금도 집필가.영화연출.종합공연 총감독으로 열정있게 활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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