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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이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그날 따라 저의 담임 선생님께서 어델 가시고 옆 반 선생님께서 임시로 수업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선생님께서는 정상적인 수업을 아니하시고, 우리를 밖으로 인솔해 나가시더니 글짓기를 시켰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간 때우기? ㅋㅋㅋ~~
(당시에는 글짓기라 칭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전혀 틀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저는 글쓰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때 글쓰기의 주제가 '들판'이었던 거 같습니다. 장르는 시였구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푸른 들판은 어떻고 구름은 저떻고 .... 그렇게 글을 써서 제출하고 그 후의 일은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동네 친구랑 하교하는데, 이 친구가 비아냥대면서 말하길
"야, 아무개야. 너, 남의 시를 베껴 냈다며?"
"뭐어?"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오늘 울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시를 쓰라고 했더니 옆반에 아무개는 남의 시를 베껴 냈다고 ...."
그야말로 어리둥절, 뭔 말인가 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글쓰기 실력도 없었거니와 애시당초 이런 일은 상상조차 안했기 때문입니다.
"얌마~ 걍 내면 냈지, 글타고 시인의 시를 베껴서 내는 넘이 어딨냐? 비겁한 새꺄~"
시인의 시? 내가?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시인의 시라고 듣는 것도 충격이었고, 그것을 그렇게 평가한 선생님의 말씀도 충격이었고, 또한 저에게 확인하지도 않고 시인의 시를 베껴 썼다고 단정지으시고 자기 반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저를 비난한 그 선생님의 말씀 또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느새 비겁자가 되어 버렸고, 친구들은 나를 왕따시키는 분위기였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나중에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교내백일장 등 글쓰기 대회가 열릴 때면 혹여 참가하라 할까봐 경끼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이 시절 저는 아무 글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글쓰기에 대해서만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하고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위의 형과 자취를 하면서 형들이 읽다가 남겨놓은 책들을 우연찮게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창비계열이었습니다. 너무 황홀했습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월간다리><문학과 지성> 등등까지 그야말로 미친듯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도 제가 글을 쓴다는건 머릿속에 조차 없었습니다. 글쓰는 것은 천재들이나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읽기만 하면서 저의 청년기는 지나갔고, 삼십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직장생활을 하는 과정에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연공서열제에서는 일류대고 뭐고 일단 근속년수를 채워야 하고 그에 따른 기본점수를 따야 하니까요. 해서 ... 그 사이에 끄적끄적 신춘문예에 응모했습니다.
1993년 12월 24일, 사무실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무개입니다"
"아, ㅇㅇㅇ 신문사입니다 ...."
신문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당선이닷!!!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어! ㅎㅎㅎ~~~
오전부터 일손을 놓은 채 안절부절 애타게 기다리던 신문사의 전화 ....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뛸 듯이 벅차오르던 그 희열! 흥분한 탓에 그거 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그 날 걸려오는 신문사 전화는 무조건 당선전화니까요.
그 날따라 엄청나게 눈이 내렸습니다. 근무하다 말고 저는 그냥 뛰쳐나갔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 인근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춘천댐 바로 위 매운탕 골목 뿐입니다. 그리로 하염없이 걸어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그런 기분이었지요. 그렇다고 하여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부나 권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살 직장은 있으니 저로서는 최고의 영예임에 분명했습니다. 글치만, 실속없는 무관의 제왕이지요. 그래도 마냥 좋았드랬습니다 ㅎㅎ~
그리고는, 지금 20여년이 지나고 ....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그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만약 그 분이 그 때 제대로 저의 글을 보아주셨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문제는, 그 선생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으나 지금도 모든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지금껏 말을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 일을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지금 이 순간이 처음입니다. 거의 50년 가까이 가슴 속에 응어리진 나만의 상처입니다. 그 선생님, 어릴 적 저의 가슴에 너무 큰 상처를 남겨 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꽃, 그 한송이를 공손히 바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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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