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우연도 지독한 우연이다. 경찰이 한미FTA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이틀에 걸쳐 물대포를 쏜 23일, SBS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 15회가 방영된 것 말이다.
< 뿌리깊은 나무 > 15회에서는 강채윤이 세종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어떤 협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만들려는 세종의 강건한 의지가 반영되었다. 그 동안 극의 전반부를 이끌었던 세종과 강채윤 간의 갈등이 해결되었고,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과 이를 방해하려는 밀본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앞으로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고한 것이다.
이번 15회의 백미는 바로 세종으로 분한 한석규의 연기였다. 아들 광평대군의 납치소식을 듣게 된 아버지 세종과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대의, 글자를 포기할 수 없는 군왕 세종의 갈등. 옥사에 갇힌 밀본 윤평 앞에서 벌이는 세종의 1인 3역의
모노 드라마는 지금까지 보아온 드라마 장면 중 최고였다.
"이럴 줄 알았냐. 똑똑히 잘 듣거라. 나는 네 놈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 또한 네놈들이 뭘 원하든 상관치 않는다. 중요한 건 말이다. 네 놈들이 뭘 원하건 네놈들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리 만들 것이다. 하여 네 따위 놈들과 협상은 없다. 또한 피로써 되갚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보여 줄 것이다. 네놈들이 어떻게 실패하게 되는지 똑똑히 두고 보거라."
그리고 계속되는 신하들의 반대에 맞서 이어지는 세종의 일갈.
"글자를 창제했느냐. 창제를 했으면 포기를 해라. 오늘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광평을 어찌어찌 하겠다. 뭐, 이거지요. 오늘까지 답을 하라 했으니 해야겠지요. 그것에 대한 과인의 답은 이렇소. 그것에 대한 과인의 답은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것이요. 아니, 이놈들이 왕손을 납거하여 겁박을 하면 과인이 예, 예 무섭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뭐 이럴 줄 알았나 보오. 아니, 우리 조선의 조종과 왕실을 이리도 우습게 알았냐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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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랄하고 자빠졌네세종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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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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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이어서 신하들에게 우리의 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아니 거의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며 밀본 정기준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이야기한다. 아주 오랜 시간 그를 옭아두었던 그 굴레를 고스란히 벗어 던지며 그들에게 비웃음을 선사한다.
"겨우 폭력이라니…"
그대들의 대답은 폭력뿐인가?비극은 < 뿌리깊은 나무 > 의 위 장면을 보면서 현 시국이 떠올랐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드라마를 보며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우울한 일이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지금의 윗것들이 하는 짓이 드라마에 투영되고 있는 걸.
드라마에서 세종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26년 밖에 되지 않은 국가의 왕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굳건하게 세우려면 자신의 아버지 태종처럼 칼을 휘두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세종은 아버지와 같은 임금이 되지 않기 위해 대신 경연을 열고 상대방을 끝까지 설득하고자 한다. 비록 임금 자신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문으로써 무를 다스리는 것이 태평성대요, 그것이 더욱 합리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은 밀본의 폭력 앞에서 당당하다. 오히려 고작 폭력밖에 없냐며 차갑게 냉소짓는다. 폭력을 쓴다는 것은 결국 그 주체가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며, 최후의 보루를 사용함으로써 밑천이 드러났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현실을 보자. 무려 건국한지 60년이 지났고, 600년 전의 백성들과 달리 21세기의 시민들은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어 SNS를 날리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기득권의 수준은 600년 전과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시민의 수준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우리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논쟁할만큼 신장되었거늘, 기득권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자들을 설득하느니 차라리 날치기를 통해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백주대낮에 문을 꽁꽁 걸어잠근 채. 그리고 결연하게 대의를 말한다. 국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대의가 결코 99%를 위하지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기껏 말하는 대의가 '국익'이라는 불분명한 개념에 근거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그들의 행위 자체가 대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왔다갔다하는 늦가을 밤, 살을 에는 추위 앞에서 막무가내로 제국민들에게 물을 뿌려대는 그들을 보며 어느 누가 대의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대의? 국익? 세종의 말을 빌어 말해보자. 지랄하고 자빠졌네. 겨우 폭력 밖에 쓰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대의를 논하는가.
소통의 상징, 한글< 뿌리깊은 나무 > 15회를 보며 새삼 느낀 건 한글의 소중함과 이를 만든 세종 이도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천 자도, 이천 자도 아닌 고작 28자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 한글.
드라마 속 강채윤이 그랬듯 당시 백성들에게 한글을 충격이요, 기적이었을 것이다. 기득권의 도움없이 사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으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의사표현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도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 아니던가.
한글. 결국 그것은 백성들과의 소통을 원했던 세종의 궁극적인 지향이다. 중국과 한자를 숭배하던 사대주의자들의 방해를 뚫고, 천심(天心)을 직접 읽어 시대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성군 세종의 의지.
문제는 현재다. 600년 전 중세국가 군왕의 소통에 대한 의지도 이러할진대, 21세기 근대국가의 틀을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떠한가. 이번에 통과된 한미FTA 경우를 보자. 정부는 이 개명한 시대에 그 협조문마저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든 쉬운 글자를 만들어 백성들과 소통하려던 세종과 달리 협조문에 대한 제대로 된 번역을 포기함은 물론이요, 국민들의 접근조차 힘들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 과연 그들은 누구의 국익을 이야기하며, 어떤 대의를 꿈꾸고 있단 말인가.
부디 MB와 기득권들이 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 를 보기 바란다. 그래도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인데 중세 군주보다 소통 의지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겠는가.
그나저나 밀본의 영문식 약자는 MB라던데.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인가? 물론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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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