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 마그리트, <Explanation>
오늘 하루 브뤼셀에서 있었던 일이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중앙역에서 지하철 1회권 하나 사려는데, 자동판매기는 카드 충전식 밖에 없어서 매표구로 갔다 . 직원이 인사를 해왔다.
◎ 곤니찌와.
★ 나, 일본 사람 아님~
◎ 니하오.
★ 나, 중국 사람 아님~
◎ 안녕하세요.
★ 오~ 안녕하세요. 한국말 발음 좋구나.
◎ 내 여자친구가 한국인이거덩.
그러더니 휴대폰 바탕화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한국 여자였다.
손.예.진. 이었다.
매표구 유리 너머로 남자 얼굴을 다시 봤다. 30대 초중반쯤 돼보이는 희멀건한 남자.
◎ 한국 드라마 전부 다 봤어. 한국영화도 아주 좋아해. 한국 여자가 제일 예뻐.
★ 좀 그렇지? 눈이 높구나~
◎ 근데 손예진이 최고야. 내년에 서울 갈 거야. 혹시 부산 알아? 거기 영화제에 맞춰 갈 거야.
★ 응, PIFF 말하는 구나? 나도 전에 자주 갔었는데.
이 말에 이 손예진 남친, 내 뒤로 줄이 길어졌는데도 정신줄 놓고...급기야 자기 페이스 북 계정 적어주며 하는 말.
◎ 우리 페북에서 얘기 마저 하자.
한국 여자가 최고라면서...곤니찌와로 인사하다니...
2.
오후에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아무 카페(라고 썼으나 술집이라 읽으면 됨)에 들어가 앉았다.
옆 테이블에서 중년은 훌쩍 넘긴 남자 한 명이 카페 직원과 투덜투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불어였지만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는 중이라는 건 알 수 있었음.)
카페 주인으로 밝혀진 이 남자의 불평을 들어주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남자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 (검지 손가락을 음악 나오는 쪽으로 가리키며) 프랭크 시나트라야.
★ 프랭크 시나트라? 난, 마이 웨이 밖에 모르는데...
프랭크 시나트라에 대해서 블라블라블라...어디서 왔느냐 블라블라블라
◎ 프랭크 시나트라가 케네디 암살에 관련된 거 알아?
★ 아니. 난, 마이 웨이 밖에 몰라.
◎ 케네디 아버지 케네디가 마피아인 거 알아? 마피아가 죽였잖아, 어쩌구저쩌구...자기들 말을 안 들으니까...개혁이 어쩌구 저쩌구.
길가 차양 아래에 앉아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 카페 주인한테 와서 볼 키스 하고, ‘사바~ 사바~’하며 인사 하고 갔다.
그 중 한 명은 무릎까지 오는 통짜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코트 위로 드러난 머리 부분은 6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주변머리만 흰색으로 조금 있는 상태.
그런데 코트 아래로 드러난 부분, 그러니까 무릎 아래로는 반투명 스타킹에 여자 구두였다. 역시 볼 키스를 나누고 사바, 사바, 하고 갔다. (남자끼리는 볼 키스 잘(거의) 안함. 남자끼리 볼 키스하는 경우는 가족 사이나 동성애자 사이에 가끔 볼 수 있음.)
★ 이 동네 유명인사인가봐?
◎ 내 이름은 J.C.야. 쟝 끌로드. 이 동네에서 J.C. 모르는 사람 없지.
(쟝 끌로드가 아니라 제이씨로 부른다고 함.)
★ 혹시 성이 ‘반 담’이야? (영화배우 쟝 끌로드 반 담이 벨기에 출신임)
내 농담을 다큐로 받은 J.C.는,
◎ 아니, 나는 저널리스트야. (이 술집 주인이라며?)
나도 저널리스트야, 할까 하다가 참고,
그러나 뽕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브뤼셀 시민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물어봤다. 불어와 더치, 두 언어가 공용어인 도시. 그 점이 브뤼셀의 최대 매력이고 장점이고 정체성이잖아, 그런데 요즘 너희 정부 없어서 어떡하니, 빚도 많다면서...조심스럽게 염려도 섞어서.
J.C.가 아까 직원과 나누던 대화가 저주와 탄식일 거라는 내 추측은 역시 맞았다.
◎ 벨기에는 죽었어. 끝났다고. 희망이 없어.
연정 구성 제안을 벨기에 플란더런쪽 정당에서 거부해서, 다시 연정구성협의가 도루묵이 됐다는 뉴스가 어제 있었다.
J.C.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더니 신문을 가져와서 내 테이블에 툭 던졌다.
(요 신문에 보면, 이 Mr, No 아저씨가 협상에 폭탄을 던졌다,는 게 작은 표제)
“Meneer Neen". (Mr. No)
이것도 싫어, 저것도 싫다며 ‘노’ ‘노’ ‘노’를 외쳐서 협상이 또 깨졌다는 기사
이 정당 당수를 ‘아니오 맨’이라 부르며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미스터 노'가 있는 당 빼고 다른 연정 파트너들은 다 합의했는데, '미스터 노'만 예스,하면 되는 상황인데, 전 국민이 정부 없는 설움을 1년 넘게 겪고 있는데, 그 안을 받아들이면, 중산층과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되므로 절대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또 깽판. (더 깊이 들어가면 정치글이 되므로 후략함.)
★ 근데 J.C. 플란더런 사람들은 왜 미스터 노를 뽑았대?
◎ 내가 뽑은 거 아니거든! (다시 저주와 탄식)
★ 선거 다시 (자알)하면 어때? (조심스럽게)
◎ 선거 다시 해도 똑 같거든! (저주, 탄식, 분노, 슬픔이 뒤섞여)
★ 암튼, 나도 니들 마음 좀 안다. 우리도 뭐 대충 비슷한데, 그래도 우리는 내년에 선거한다고 엄청 기다리고 있거든. 니들은 가을에 선거 다시 하자고 한다며?
◎ 다시 해도 똑 같다고!!!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똑같아서 지금 그 놈이 된 거라고!
★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 왕한테 가는 거지? 왕이 중심 좀 잡아주나?
(니들 왕, 어떤지 대충 안다만...)
◎ 왕? 왕이 더하거든.
★ 알았어. J.C. 맥주 한 잔 해...
그리고 나선, 비 그칠 때까지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하다 왔다.
왠지 미안한지 J.C.는 감자칩을 서비스로 계속 갖다 주었다.
(나도 왠지 미안해서 맥주를 자꾸 시켰다.)
J.C.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풍년이라 지랄이라는...대충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여자란 참 아름다워. (길가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들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참 아름답단 말이야. 오십이 넘어도 육십이 넘어도...(아까 그 바바리 볼 키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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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