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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가물 때 물을 자주 준 것 말고.
마누라가 거름을 줘야 한다는 이웃 할아버지의 충고를 들고와서
거름 사오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
- 거름이 없어도 자연이 다 알아서 해주거니와 비록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해도 하늘의 뜻을 겸허히 수용해야 하느니라...
바가지가 날라왔다.
내 고추는 거의 한달간 주눅이 들었지만 위와 같은 가지를 수확하였다.
혹시 탑마트에서 파는 가지와는 좀 차이가 난다. 바나나처럼 이쁘지도 않고 색깔도 윤기가 있게 검은 자주빛을 띠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왼쪽에 있는 색깔 연한 거 살짝 데쳐 양념해서 먹었는데, 가죽을 씹는 느낌이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탑마트에 저런 색의 가지는 구입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것은 무엇인가? 가지인가 똥인가?
가지를 이렇게 특이한 모양으로 만든 것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어줍잖은 농사 기술인가? 하늘의 선물인가?
아무튼 똥가지 옆에 살짝 보이는 신라면을 끓이면서 잘라넣어 맛있게 먹다가, 문득 필연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밀물처렴 밀려와 또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저 가지는 저런 모양으로 생겨먹도록 씨앗 시절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땅과 햇살의 기울기, 가지의 뻗어나감의 각도에 따라 저런 모양으로 운명지워진 것일까? 필연적으로 저런 가지가 나온 것인가? 우연히 두더지가 가지 옆으로 지나가다가 한 번 툭 친 것 때문에 저렇게 똥모양으로 형상화된 것인가? 그렇다면 두더지가 지나간 것은 또한 우연인가 필연인가?
라면이 뿔어터졌지만 나는 의문에 잠겼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후 깨어났을 때 필연성이라는 단어를 잊어먹고 말았다. 대신에 당위성이라는 단어를 잡고, 이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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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