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계발서'에 미쳐서 '자기'와 '계발'을 안하고 있는 20대 중후반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끔 이만교 작가의 '글쓰기 공작소'와 소로우의 '윌든'을 활용한다.(글쓰기 공작소는 1탄이 핵심) 글쓰기가 아닌 삶에 대해 얘기할 때 쓰는 책들. 이만교 작가는 부지불식 간에, 움베르트 에코가 말한 '작가를 넘어서는 작품'의 수준을 '글쓰기 공작소' 전반부에서 보여준다. 그는 다시는 그런 배치-를 하지 못할 것이다(이 작가님, 악담해서 미안해요). 자기를 규정짓지 않아야 자기의 방향을 대략 느낄 수 있고(알 수 있고가 아니다. 그런 건 할아방구들의 몫), 그 느낌에 몸을 실어야 계발이든 개발이든 개발새발이든 굿판을 벌여볼 수 있다. 월든은 그런 굿판을 벌인 한 무당의 넋두리고.
이 모든 일의 핵심은 간단한 것으로부터 비롯한다. '낯설게 하기'. 자기, 계발, 굿판 모두 익숙하지도 생경하지도 않은 순간들이 오며가며 만들어 지는 것. 다만 우리는 거의 매일 매번 '익숙하단 착각' 속에 있으므로, '낯설게 하기'는 당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덕목이 된다. 이를 글쓰기에 대입하면, '낯선 문장 만들기'가 될 것이고, 부연하면 '일상은 없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무겁게 하지 않기 위해, 유인/유도하며 쓰는 도구가 '글쓰기'다. 인생이 답답해도 삶을 전복해보려 하면 무서우니까.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강하지 않은 대신 그 반대급부도 두렵지 않으므로 진입이 쉽다. 삶이든 글쓰기든, 전복-흘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식상한 이야기일까봐-라는 단순하지만 살벌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유독 아래 대목이 귀에 쏙 들어왔다.
1. 배경은 소고기 파동 촛불집회 현장. 물대포, 방패, 명박산성, 촛불, 동영상 카메라,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던 세기의 현장. 이 때 시국미사가 집전됐다. 김인국 신부가 나왔다. 그가 사용한 문장은, 정권의 언어와는, 그리고 80년대 사회운동권의 언어와도 명백히 달랐다. 신부가 미사를 끝내고 촛불행진 가두시위를 하겠다면서 참여자들에게 묻는다. 신부 : "우리가 왜 행진을 하는 거지요?" 참여자들 :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부 : "우리의 주장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인가요?" 참여자들 : (힘차게) "네!" 신부 : "아닙니다." 참여자들 : (웃음) 신부 : "국민들은 이미 우리 주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촛불행진을 하는 것은, (폭력진압에 의해 무너진) 국민들의 다친 상처와 자존감을 위로하고 달래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존심과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2. 이만교 작가는 김인국 신부의 이 워딩에 다소 놀랬다고 고백한다. 그가 예상하고 사용하는 문장보다 한결 사태를 정확하게 짚어냈고, 심지어 마음을 속 깊이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고도 한다. 새로운 인식의 새로운 언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보다 강력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는 것.
또한 작가는 말한다. 낯설게 하기는 시와 문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술자리 수다에서부터 토론과 집회 현장에 이르기까지 언어를 다루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말하기-듣기-읽기-쓰기가 진행되는 모든 위치와 매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관습적 언어, 일반적 언어, 상투적 언어, 통념적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설사 단순한 비유에 지나지 않더라도 낯설게 하기는 세상을 색다른 계열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기성질서에 무엇인가를 더 보태는, 일종의 잉여적 혁명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일갈.
3. 낯선 문장은 하늘에서 떨어진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통찰'을 끄집어 내는 작업에 가깝다. 그래서 이 문장은 외부의 것을 수용하는 작업으로만은 절대 가질 수 없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바야흐로 허물어지고, 그것이 칡뿌리처럼 뒤엉켜 옹골차게 순간을 고양할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독서보다 사유를 더 중히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 궤적이 문체에 반영된다고 한 핵심이 여기에 있다. 한 마디를 휘갈기고 남기는 것, 그것이 무언가 대단한 심적 노고와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일상에 대한 우리의 외면을 방증한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과소평가 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지나친 과소평가는 역설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의 반영이라는 일종의 '교만'일 수 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생산'하는 '이야기 공장', '이야기 기계'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세상에서 유일한' 이야기들. 가만 잘 들여다 보면 그 순간 모두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 낯선 문장은 이렇게 삶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게 이만교 작가의 주장이다.
일상을 그대로 바라보며 마음의 청진기를 갖다 대는그 순간 우리는 다른 계열의 무언가를 쓸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비단 문장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결에서도. 정답이 없는, 오로지 만드는 답만 있는 이야기인지도.
소위 '낯설게 하기'는 문법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실질적 정직의 필연적 결과이다. '낯설게 하기'는 독특한 비유나 수사적 기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더욱 정확하고 면밀하며 풍요롭게 바라보려고 할 때 기성언어와는 다른 차이가 생겨나면서 나타나는 결과적 현상이다. - 이만교 |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